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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e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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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고 난 뒤 어느 순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놀라는 때가 있다. 어릴 적 꿈꿔 온 내 모습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당황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때가 바로 또 하나의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다. 무엇이든지 가능할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의 거대한 꿈과의 이별.

청소년 시절에는 되고 싶은 것이 참 많다.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어서 뭇사람들에게 추앙받는 화려한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때론 모든 것을 희생하며 헌신하는 성자 같은 모습을 꿈꾸기도 한다. 무한한 가능성이 내 앞에 펼쳐져 있으므로 내가 바라고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다 이룰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그동안 꿈꿔 온 나와 많이 다름을 알게 된다. 또한 거울을 깨 버린다고 내 모습이 변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서, 체념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한다. 그것은 어떤 잘못을 해도 용서받을 수 있으며,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면 누군가 틀림없이 나타나 상황을 바꿔 줄 것이라는 어릴 적의 기대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권리보다 의무가 큰 시절이 왔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나의 힘은 그다지 크지 않고, 누릴 수 있는 자유 또한 제한적이며,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조차 불완전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한계를 깨닫는 것, 이젠 더 이상 선택할 수 없게 된 것들을 인식하는 것, 이루지 못한 꿈과 현실의 간극을 깨닫는 것 등은 인간 존재의 한 모습이다. 그러므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가 세상이고 내 소망은 명령이다'라는 전지전능했던 유가기의 나르시시즘을 포기하고 그와 이별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 (중략) ...

어른이 되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이라는 땅에서 한계를 인정하고 꿈을 현실에 맞춰 수정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즉 높은 자아이상을 떠나보내고 이를 애도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 (중략) ...

자아이상이란 '나는 이렇게 되어야 한다'라는 자신에 대한 요구를 의미한다. 자아이상은 성장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받은 칭찬이나 부모가 추구하는 가치를 내재화시키는 가운데 형성되는 것으로, 양심과 함께 초자아를 구성한다. 그런데 자아이상이 너무 높으면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과는 거리가 먼 초라한 자신과 현실에 실망하고 우울해지기 쉽다.

... (중략) ...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과거와 이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이별이 아무리 슬프고 싫어도 말이다. 이 떠나보냄의 작업이 바로 '애도'이다.

모든 상실에는 애도 과정이 필요하다. 이때 애도의 과정은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고 일련의 과정을 밟는다. 상실을 맞이하면 처음에는 그 상실을 부정하게 된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라며 고개를 젓고 그것이 내 곁에서 멀어졌음을 부인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차츰 그것이 없는 현실이 반복적으로 펼쳐지면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말하자면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냔 말야!"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 상실에 분노한다는 것은 그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면서 점차 그것을 영원히 잃어버렸음을 인정하고 슬픔에 잠기게 된다. 이 슬픔의 기간에 우리는 인생에 대한 깊은 통찰과 이해를 얻게 된다.

... (중략) ...

이 과정이 끝나면 우리는 비로소 잃어버린 것에 대한 추억을 내면에 깊이 간직한 채 새로운 만남을 향해 출발할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애도란 충분히 슬퍼하고 받아들임이다. 그리고 떠나보냄이고, 새로운 출발이다. 또한 잃어버림이고, 그 잃은 것을 내 안에 영원히 간직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애도를 못하면 과거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그 안에 사로잡혀 과거 속을 헤매는 망령처럼 살게 된다.




김혜남의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pp.11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