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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2009/09/01 09:43 | Posted by Sophie Kim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카테고리 인문
지은이 김정운 (쌤앤파커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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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행복하려면 반복되는 정서적 경험이 풍요로워야 한다. 우리가 음악회나 미술관을 찾는 이유는 그곳의 리추얼을 통해 생산되는 정서적 경험을 원하기 때문이다. 잘 차려입은 아내의 팔짱을 끼고 음악회장의 문을 열 때 경험되는 정서는 아주 특별하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낯선 곳의 낯선 문화에서 느끼는 독특한 정서적 경험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정서적 경험이 꼭 일상을 벗어나야만 가능한 것은 절대 아니다. 내 일상에서 즐거운 리추얼을 다양하게 개발하면 된다. 특별한 느낌과 의미를 부여하는 반복적 행위를 통해 우리의 삶을 즐거워진다. 즐거운 정서적 경험이 동반되는 까닭이다. --- pg.30


요즘 마라톤대회는 절대 적자 나는 법이 없다고 한다. 전국에서 고통을 자처하는 사내들이 밀려들기 때문이다. ... (중략) ... 왜 하필 그 재미없고 고통스러운 마라톤에 열광하는 것일까?

존재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상과 더 이상 소통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리는 이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존재 확인 방식은 '자학'이다. 온몸으로 느껴지는 고통을 통해, 존재를 확인하려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와 소통을 통해 더 이상 확인되지 않는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고통을 통해 느끼고 싶은 것이다. 마라톤대회에 참가하여 완주한 이들에 대한 인터뷰에 한결같은 대답이 있다.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뛰었다"는 것이다. 아, 그러나 나 자신은 '싸워서 이겨야 하는' 대상이 절대 아니다. --- pp.61-62


아, 심리적으로 한번 무너져본 사람은 안다. 아무리 멀쩡한 사람도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혼자서는 도무지 감당이 안 된다. 이렇게 한번 무너지면 정말 초라해진다. 처절하게 무너진다. 그리고 그 위기는 살면서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 심리적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나도 내가 그렇게 쉽게, 우습게, 간단하게 무너질 줄 몰랐다. 두렵고 떨려서 차마 내 기숙사 방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밤만 되면 울며 베를린 밤거리를 헤맸다. 김 서린 창문 너머의 행복한 가족들의 모습을 들여다보며 멍하니 서 있다가 돌아오는 게 전부였다. --- pg.95


내게 슈베르트는 면역시스템이다. 존재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하나의 세포가 유지되기 위해 세포의 안과 밖을 구별하고, 막으로 둘러싸인 안쪽의 항상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인간도 자신의 안과 밖을 구분해야 한다.

세포가 자신의 안과 밖을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면역시스템이다. '내가 아닌 것'의 침입을 막아내고 내 안의 항상성을 유지해주는 세포의 면역시스템처럼, 슈베르트의 가곡은 내 안의 항상성을 유지시켜준다. ... (중략) ... 면역시스템이 망가지게 되면 '나'와 '내가 아닌 것'을 구분 못하게 된다.

바쁠수록, 정신없을수록 내가 누구인지 확인해야 한다. 당연히 여겨지는 어느 회사의 부장, 사장, 교수와 같은 내 사회적 지위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내 본질과 상관없는 것들이다.

생각해보라! 도대체 언제까지 사장할 것인가. 언제까지 교수일 것인가. 나는 어느 대학의 교수나 어느 위원회의 위원장이 아니다. 나는 슈베르트의 노래를 따라 부르며, 내 노래에 감동하여 눈물 흘리고, 아내의 관심이 조금만 식어도 쓸쓸해하고, 하늘거리는 주름치마에 가슴 설레어 한다. 그게 진짜 나다. --- pp.99-100


*   *   *   *   *  


베스트셀러에 올라오기도 했고, 재미있게 읽었다는 서평이 많아 촬스에게 선물한 책이다. 촬스가 다 읽고서는 이 책은 부부가 같이 읽어야 하는 책인 것 같다길래 나도 읽어보았다.

책 제목은 가정파탄을 조장하는 책인 것처럼 자극적이지만 사실상 내용은 전혀 다르다. 일상의 타성에 삶을 내던진채 삶의 재미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사는 대한민국 보통 남자들의 심리에 대해 서술하고, 삶에서 의미를 찾고 재미를 찾자는 내용이다. 저자의 개성이 살아있는 문체때문에 강의를 듣는 느낌으로 읽을 수 있고, 내용자체가 우리의 삶과 바로 직관되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이며 읽어갈 수 있는 책이다.

현실에서 즐거움을 찾기 보다는, 현재에는 고생도 사서 해가며 이겨내어 미래에 행복하자는 식의 교육철학이 과정보다는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풍토를 낳게 하고, 그로 인해 멀쩡해보이는 성인들의 수많은 심리적 불치병을 양산하게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 일상의 삶에서 충분한 재미를 즐기는 사람이 자신에게 맡아진 일도 재미있고 창의적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알고, 삶에 유머와 재미라는 양념을 적절하게 뿌려넣을 줄 안다. 매사가 책임과 의무 뿐이고 도무지 재미있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삶이란 얼마나 허탈하고 불쌍하고 삭막한 삶인가. 

나 또한 저자처럼 심리적으로 한 번 크게 무너져본 사람이라서 잘 안다. 사람이 살면서 타인과 소통하고, 정서와 감정을 공유하며 사는 것의 소중함을. 그리고 또한 사회적 지위가 아닌 진짜 내 본질적인 자신을 찾고 내 자신의 항상성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