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피두 센터라는 이름만으로 엄청난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지만, 무엇보다 국내에서 인기많은 마티스의 작품을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기대로 찾게 된 <퐁피두 센터 특별전-화가들의 천국>.
근현대적인 작품들로 구성되어서인지 지난 번 램브란트 전보다는 그림의 소재나 주제가 경쾌했고, 설치미술이나 사진 등을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미술작품들을 접할 수 있어서 지루하지 않게 관람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한계점이라고 한다면 근현대미술의 난해성이다. 간혹 형태를 제대로 알아보기 힘든 그림이라든지, 너~무 심플해서 무수한 자의적인 해석을 낳게 하지만 진정한 작가의 의도를 도무지 알 수 없던 작품들도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쉽고 어렵고를 떠나서 이러한 대작들을 언제 또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나름대로 성의껏 관람했는데, 그 중 인상깊었던 몇몇 작품과 간단한 감상을 기록으로 남겨둔다.
수 메이 체, <메아리>, 2003
이번 전시의 독특성을 느끼게 해준 작품 중 하나이다.
전시관을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첼로 연주음이 들리길래,
전시관 내에서 틀어주나보다 했는데 알고보니 이 영상미술때문이었다.
4분 55초짜리의 비디오 설치물인데, 언뜻 보면 영락없는 그림같다.
드넓은 들판에 붉은 색 옷을 입은 여인이 깊고 푸른 숲을 마주하며 첼로를 연주한다.
그러면 자연은 그 연주를 흡수하여 웅장한 메아리로 다시 음악을 들려준다.
즉 첼로를 통해 자연과 깊은 교감을 나누는 것이다.
이 여인의 연주하는 모습도 빠져들게 만들지만,
사방이 고요한 가운데 메아리쳐 들려오는 첼로소리는 정말 신비했다.
지오제페 페노네, <그늘을 숨쉬다>, 1999-2000
단독 공간의 모든 벽면이 월계수잎으로 채워진 200개의 철망으로 둘러쌓여있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말 그대로 그늘을 숨쉬게 된다.
약간 습한듯 하면서 어둑한 공간에 들어가 월계수 향을 가득 들이마시면서
벽을 따라 걷다보면 저기 가운데 위치한 황금색 모양의 폐를 마주하게 된다.
참 기발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Raoul Dufy, <탈곡>, 1953
뒤피의 마지막 해에 미완성으로 남겨진 작품이라고 한다.
풍요로움을 보여주는 황금빛 색상때문인지 생동감이 더하고
교묘한 원근감이 느껴져 현실감을 더하면서도
환상적인 느낌을 동시에 전해주기도 한다.
Raoul Dufy, <붉은 바이올린>, 1948
역시 뒤피 작품인데, 음표들과 바이올린이 부분이 교묘히 섞여있어서 그런지
그림에서 음악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글렌 브라운, <Architecture and Morality>
보자마자 섬세한 표현력에 놀라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기발한 아이디어에 다시 한 번 놀라게 되는 작품.
어딘가 모르게 섬찟한 느낌을 주는 그림이다.
지성을 상징하는 화이트 컬러의 셔츠위에 사람의 얼굴이 아닌,
고인의 명복을 빌며 헌화하는 흰국화가 놓여있다니...
게다가 목부분은 마치 꽃이 썩어가기라도 하듯 매우 징그럽게 묘사되었다.
Braque, <Still Life with Musical Instruments> / <The Red Round Table>
이번 전시에는 조르쥬 브라크의 작품이 유독 많았다.
역시나 입체파라서 그런지 일반 정물화와는 달랐다.
피카소의 추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의 정물화는 브라운톤의 차분하면서도 절제된 듯한 느낌을 주었지만
그의 풍경화는 전혀 다른 사람의 작품처럼 현란한 색채들로 가득했었다.
칸딘스키, <파랑을 향하여>, 1939
이번 전시의 유일한 칸딘스키 작품이다.
제목이 <파랑을 향하여>인데, 보통 파랑색은 아르카디아,
즉 낙원을 상징하는 색깔로 많이 표현된다고 한다.
악기들이 독특하게 양쪽에서 사선을 그리며 중앙 즉 파랑으로 보이고 있다.
재미난 구조때문에 악기들이 스스로 음악을 연주하는 듯 경쾌하고
중앙으로 모아지는 각도때문에 뭔가를 추구한다는 메세지가
효율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아마도 음악을 통해 낙원으로 간다는 메세지였을까?
페르낭 레제, <여가-루이 다비드에게 보내는 경의>
검정색으로 윤곽을 또렷하게 묘사한데다가
알록달록 색깔들, 그리로 어딘가 기묘하게 보이는 인물들이 인상적인 그림이다.
유럽 동화책 속의 삽화같은 느낌이다.
Bonnard, <The Studio with Mimosa> / <The Almond Trees in Blossom>
장식성이 매우 뛰어난 작품이었다.
눈부신 색채때문인지 보는 내내 눈이 부셨다.
비단가게를 구경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정말 햇살 좋은 날 피크닉을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Matisse, <Still Life with Green Sideboard>, 1928
역시나 예쁘고도 예쁜, 집안에 걸어두고 싶은 마티스의 작품이다.
이 작품 말고도 유명한 <붉은 실내>라는 작품도 전시되었으나
이미 블로그에 포스팅한 적이 있기에 이곳에는 생략한다.
Matisse, <Polynesia, Sky>, 1946 / <Polynesia, Sea>, 1946
마티스가 꼴라주도 했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알고보니 주로 말년에 꼴라주에 몰입했었다고 한다.
분명 하늘과 바다라고 주제를 나뉘어 표현했건만,
언뜻 보면 하늘은 바다같고, 바다 또한 하늘같으니...
마치 성경 속에서 하늘과 바다가 창조되기 전 모든 것이 하나였던 때를 보는 듯 했다.
역시 파랑색이다. 낙원을 뜻한다는...
낙원에서는 하늘이 바다가 되는, 모든 사물이 하나로 통하게 되는 것일까?
호안 미로 (Joan Miro), <블루 2>, 1961
이렇게 작은 사이즈로 이 작품을 보면 '이게 뭐야? 이것도 그림인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 작품은 실제 크기도 엄청 크거니와 여기에 쓰여진 블루칼라가
어찌나 생생하고 신비한지 압도당하게 된다.
신비롭기도 하지만 무섭기도 하고 차가운 느낌을 주는 파랑바탕에
피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붉은색의 선이 수직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검은색의 크기가 다른 점들이 수평으로 이어간다.
무엇을 표현한 것인지 애매모호하지만,
어쨌든 차갑고 매몰찬 현대사회에서 존재감을 찾기 위해 몸무림치는
뜨겁고 강렬한 그 무엇이 느껴지지는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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