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이렇게 얄미울 정도로 현실을 냉혹하게 표현해놨는지 읽으면서도 내내 가슴이 무거웠다.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사실은 보이지만 일부러 보지 않으려고 시선을 피해왔던 것들에 대해 아주 속을 까뒤집어가며 보여주는 책이다.
이 책의 표지는 유난히 멋지다. 한 평범하고 조용한 마을에 몇명의 여인들이 보인다. 아이를 데리고 걷는 여인, 서로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한 여인들, 또는 벤치에 앉아서 쉬는 듯한 여성도 보인다. 이런 그림에서는 소위 말하는 현대사회의 치열한 경쟁이나 전쟁이란 단어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 남편의 안정적인 수입과 가정이라는 울타리안에서 평화를 멋지게 조리해내는 우아하고 여유로운 멋진 안주인의 이미지만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이 표지를 넘기고 내용을 한장한장 읽어나가다 보면 마치 우아하게 수면위를 떠다니는 백조의 쉴새 없이 움직이는 발을 보여주는 듯 그들 내면의 시끄러운 속내를 적나라하게 묘사해놓고 있다. 알링턴 파크라는 런던 근교의 베드타운에 살고 있는 다섯 여인들의 하루를 보여주는 이 소설은 가정의 화목을 주제로 하는 다소 교훈적인 드라마와는 달리 그들의 엄마로서의, 혹은 아내로서의 삶을 매우 무미건조하고 어둡게 그려내고 있다. 결혼 전 꿈도 많고 열정도 가득했던 그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 엄마와 아내라는 타이틀만으로 살아가게 되었을때 자신들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흘러가는 삶의 늪에서 자맥질 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작품을 감상할 때는 최소한의 안전거리가 필요한 법인데 때로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개인적 감정이 불쑥 튀어나오기도 했다. 작가인 레이첼 커스크(Rachel Cusk)에게 괜한 반항심이 생겨나기도 하고... 우리의 삶이 꼭 이런 것만은 아니잖아, 라고 따지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해보면 결국 이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주부의 삶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모성이 갖는 이중성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니 자기 할 일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쓰디쓴 풍자다. 환상의 얇은 장막을 벗겨버리고 그 안의 리얼한 속내를 날카롭게 서술한다. 모성이란 여성의 당연한 본능이라 여겨지고 모성애를 신성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삶을 이런 각도로 바라보고 묘사한다는 것은 작가 입장에서도 일종의 도전장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보면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지는 격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시간의 유한성으로 인해 결코 불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는 우리는 스스로의 삶을 완전히 다 소진시키기 전에 한번쯤은 용감하게 정면으로 마주보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주제임은 확실하다.
물론 생각해 본다고 어떤 정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어디 인생에 확실한 답이 있던 적이 있었던가. 늘 불확실함 속에서 살아나가는 것이 인생이다. 늘 헤매고, 다시 찾고, 그러다 또 길을 잃는다. 그렇지만 생각없이 길을 걷다가도 문득 고개를 들어 지금 여기가 어디쯤인지 그리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방향을 확인해 볼 필요는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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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얼마 동안 그녀는 가정과 남편과 아이들이 보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마치 그런 것들이 평범하지 않은 일이고, 인간의 경험을 좀 더 세련되게 만들어 주는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그런 것들을 가지고 나서는 그녀의 혈관 안에 매일 조금씩 납덩이가 쌓이기 시작했다. --- pg. 55
그런 물건들에 비하면 자신이 입고 있는 해진 청바지나 염주 같은 목걸이는 뭐란 말인가? 그건 지워져 버린 흔적, 비참할 지경으로 초라해진 자신의 여성성이었다. 솔리는 자신에겐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마호가니 서랍장 위에 놓인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니 눈물이 났다. 온갖 스트레스로 부스럼과 주름과 여기저기 붉은 점들이 가득한 얼굴에, 갈색 머리는 무슨 짐승의 털처럼 보였다. 이게 현실일까? 끔찍할 정도로 불공평한 이 느낌이? --- pg. 170
시간, 사랑, 혹은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의 느낌 같은 건 중요하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집, 능력 있는 남편.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 이제 그들은 파멸만은 피하고 싶었다. 정치인들처럼, 그들은 살아남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다. --- pg. 194
이 학생들의 엄마들은 초상화에 쓰인 물감처럼 지난 세월 동안 이 아이들을 차곡차곡 채워 왔을 것이다. 그 엄마들이 이 아이들에게 색깔을 입히고, 형태를 잡아 주고, 지금 이 모습으로 빚어 냈다. 매번 붓질을 할 때마다 엄마들은 모두 스스로 예술가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엄마들은 모두 예술가가 되어 이 여자 아이를, 자신의 딸을 창조해 간다고 느꼈을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그 엄마들은 모두 쉬지 않고 꾸준하게 딸아이에게 어떤 생각을 심어주고, 젖을 먹여 키우고, 조금씩 조금씩 물감으로 색을 더해 주었다. 지금 그 엄마들이 교문 밖에서 차에 시동을 켜 둔 채 기다리고 있다. 자신은 공허하게 비어 버린 엄마들이 자동차 거울을 보며 주름진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면서 기다리고 있다. --- pg. 214
사소하다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압도적이지도 않은 현실. 어느 쪽이든 그 현실은 그녀를 양수에 담긴 태아처럼 감싸 안고는 꼼찍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하루 종일 그렇게 덫에 걸린 것처럼,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도, 어떻게 하면 빠져나갈 수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멍하니 시간을 보내곤 했다. --- pg. 221
가족이란, 정말 위험한 것이었다. 가족은 흐린 날의 망망대해처럼 혼란스러웠다. 오락가락하는 믿음이 있고, 잔인함과 미덕이 교차하고, 감정과 도덕이 요동치는 곳, 끊임없이 폭풍우와 고요함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미친 듯이 폭우가 내리다가 다시 햇살이 비치면 결국 둘 사이의 차이를 잊어버리게 되고, 그런 것들이 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무엇이 되는지도 알 수 없게 된다. 결국엔 그저 살아남는 것, 헤치고 나가는 것만 중요할 뿐이다. --- pg. 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