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훌륭한 통찰을 주는 좋은 책이다. 단지 생각이 너무 많아져서 심리적으로 약간 버겁게 하는 책이라는 뜻이다.
이 책의 주인공 찰리는 정신지체자이다. 몸은 성인이지만 유아의 정신세계를 가진 청년이다. 그러나 다른 지체자들과는 달리 뭔가를 배우려는 학구열에 불타있다. 조금이라도 더 똑똑해지고 다른 사람처럼 되는게 소원이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더 좋아하게 될 것이고, 친구도 더 많아질 것이라 막연히 기대한다.
이런 찰리가 획기적인 임상실험 대상자에 선정된다. 지능을 높여주는 실험. 생쥐에게만 실험을 해왔고 인간에게는 아직 적용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찰리는 정신의학계의 시선을 한몸에 받는 첫 인간 실험대상이 된 것이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이어서 날이 갈수록 찰리는 엄청난 천재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간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엔 그가 보통사람들을 무시해가기 시작한다. 예전에 그가 동경해 마지 않던 교수들이 얼마나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무지한지, 권력 앞에 얼마나 비굴한지를 깨닫고, 대학생들 틈에 끼어 철학이나 예술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을 꿈꾸던 찰리가 그들의 가볍고 얕은 지식의 실체를 알게 되고는 나중엔 함께 대화하는 것 조차 시간낭비라 여긴다.
또한 기억력이 발달하면서 악몽처럼 문득 떠오르는 과거의 모습, 그리고 무의식 속에 묻혀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마주하게 된다. 지능이 낮았을 때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에게 우호적이라 생각했었건만, 제대로 세상에 대한 눈을 뜨고 보니 그들의 웃음이 냉소적인 비웃음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토록 바라던 지능과 지식을 얻었고, 그로 인해 더 이상 무시받지 않아도 되는 위치에 올랐으나 그는 날이 갈수록 친구를 잃고, 웃음을 잃고, 행복을 잃어간다.
찰리는 그와 같은 수술을 받은 생쥐 Algernon에게는 더 할 수 없는 애정을 보인다. 마치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을 것이다. 그러던 알제논이 언젠가부터 이상 증상을 보이고 결국은 죽고 만다. 그는 알제논을 묻어주고 그의 무덤에 헌화를 하곤 한다. 찰리는 자신도 곧 그와 같이 될 것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알게 되고, 실제로 찰리는 급속도로 다시 지능이 낮아지는 과정을 겪어가며 원래의 찰리로 되돌아가게 된다. 예전에 그렇게 벗어나려고 애썼던 보호소로 자기 스스로 발걸음을 내딛으며 끝을 맺는다.
다시 퇴행해가는 과정에서 그 퇴행의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춰보려고 부단히 애를 쓰더니, 나중엔 그것을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잠시나마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던 기회를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고, 실험 관계자에게도 고마움을 표현하는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이 소설은 이러한 내용을 서술식으로 풀어가는게 아닌, 찰리가 직접 적어가는 일기(progress report)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처음에는 철자가 엉망인 페이지가 한참 진행되다가, 찰리의 지능이 좋아질수록 어려운 어휘가 제법 등장하는 현학적인 리포트의 모습을 보인다. 그러다가 후반부엔 다시 뒤죽박죽 앞뒤도 안맞고 철자도 엉망인 어린 아이들의 일기 수준으로 끝을 맺게 된다.
어쩜, 찰리의 경험 자체는 우리 인생 전체의 스펙트럼과 딱 맞아떨어진다. 아무 것도 모르면서 뭔가를 소망하고 바래고, 그것을 향해 전력질주도 하고, 한 때는 자신이 세상 최고인 것 처럼 세상을 경멸하기도 했다가, 외로움도 겪어봤다가, 노년에 이르러 인생의 허탈함과 죽음에 대한 생각 등으로 심리적인 방황을 겪고, 결국은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경험한 것들에 대한 감사를 느끼며 부족한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 그리고 빈 손으로 태어났듯 빈 손으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까지...
최근의 정신없는 일들때문에 조금 읽다가 한참을 거들떠도 안보다가를 반복하면서 읽었더니 느낌이 지속되지가 않아 진정한 독서는 안된 듯 하여 좀 아쉬움이 남는 책이긴 하다. 그리고 이 책을 덮고 나니 갑자기 유쾌하고 가벼운 소설에 대한 갈증이 샘솟는다. 콜라 같은 느낌의 책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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